제1차 세계 대전 요약
제1차 세계 대전 요약
대표적인 사례로 를 들 수 있다.
1914년 11월에는 오스만 제국이 참전하면서 전역이 , , 등으로 확대되게 된다.
1915년 2월 16일, 오스트리아와의 동시 협상에도 불구하고, 런던의 특사가 이탈리아가 협상국에 참여할 경우 좋은 거래를 해 주겠다는 제안을 했다.
Fromkin, David 2004 , 《Europe's Last Summer: Who Started the Great War in 1914? 결국 독일 황제 는 제위를 포기하고 로 망명했다.
독일의 응답을 보고 연합군 정부는 1917년 1월 14일 자유롭게 명확한 요구를 제시했다.
: 1918년 5월 25일• 반면에 이탈리아군은 연이은 공세의 보잘것없는 성과로 사기가 바닥을 치고 있었고, 부대에서 항명과 폭동이 빈발해 무능력한 상태에 놓였다.
이에 따라 이탈리아는 2차대전까지 기회주의적 외교노선을 고집하였으며, 이리 붙었다 저리 붙었다 빼먹을 것만 빼먹는 전술을 구사했다.
동부전선 : 러시아는 독일의 예상보다 훨씬 빨리 동원령을 마치고 독일을 향해 진격하기 시작했다.
Lyons, Michael J 1999 , 《World War I: A Short History》 2판, Prentice Hall,• 막강한 물량의 미국 참전은 1차 세계대전의 판도가 바뀌게 된다.
이 견제공격은 이틀만에 이탈리아에 손쉽게 반격당했다.
물론 1차대전 직전 독일-영국은 해군 군비경쟁으로 경쟁한 역사가 있었지만, 고립주의 외교를 펼치던 영국이 참전하게 된 직접적인 계기는 독일의 슐리펜 계획이다.
마지막으로, 제1차 세계대전 기간에 발생한 파괴와 끔찍한 인명 손실로 인해 기존의 많은 참전국에서 문화적 포기라고 하는 현상이 발생했다.
런던 조약은 4월 26일에 채결되었으며 이탈리아는 1개월 내에 전투에 참여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10달 동안 양측에서 쏟아부은 포탄만 총 4000여 만 발이었다.
이 때문에 독일은 빌헬름 2세 황제가 비스마르크를 해임하기까지, 신생강국치고는 상당히 얌전한 태도를 보여왔다.